바람난 뒤 친구들이 데리러 온 마지막 밤
바람난 뒤 친구들이 데리러 온 마지막 밤
미숙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S대 합격을 목표로 미친 듯이 공부했다.
친구들은 “네가 S대 가면 소가 웃겠다”, “개도 웃겠다” 하며 빈정거렸지만 미숙이는 속으로 ‘웃어라, 언젠가 너희 코가 납작해질 거야’ 하며 버텼다. 결국 정말로 S대에 합격했다. 교문에 현수막이 걸리고, 합격자 23명 명단에 미숙이 이름이 당당히 올라갔다. 친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후 미숙이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같은 과 남자와 결혼해 시골로 내려갔다. 남편 고향인 경북 경산에서 시댁이 운영하는 대형 젖소 목장 옆에 새 집을 짓고, 온실과 정자까지 만들었다. 친구들은 “젖소부인 됐다”, “복 터졌다”며 부러워했다. 미숙이는 행복해 보였다. 남편과 금슬 좋고, 목장 일도 열심히 돕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 미숙이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아 씨, 미숙이가 설아 씨 집으로 놀러 간다고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요.” 미숙이는 남편에게 “설아 집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결혼식도 참석하고 올게”라고 거짓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미 일주일째 행방불명이었다.
친구들은 발칵 뒤집혔다. “도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젖소 젖이나 짜면서 조용히 살던 년이 왜 갑자기?” “혹시 납치?” “아줌마를 왜 납치해? 미쳤니?”
우리는 미숙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뒤졌다. 친척집, 선후배, 연고 있는 곳 모두 전화하고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제일 친했던 연주 언니 집에 갔다. 연주 언니는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
“한 달 전쯤 미숙이한테 전화 왔었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대… 자기 남편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났대… 집 나가 버릴까 고민한다고… 내가 엄청 나무랐는데… 설마 진짜로 나왔을 줄은…”
“언니! 왜 진작 말 안 했어?!” “내가 그게 진짜로 나올 줄 알았니? 그냥 투정인 줄 알았지…”
우리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미숙이가 목장에서 만난 젊은 우유 운반원, 순철. 잘생기고 싹싹한 그 남자에게 미숙이는 완전히 넘어갔다.
며칠 뒤, 미숙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아야… 나 미숙이야… 지금 셋방에 있어… 남편한테 거짓말하고 나왔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우리는 급히 달려갔다. 변두리 허름한 셋방. 문을 열자 미숙이는 머리 헝클어진 채,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눈은 퉁퉁 부었고, 옷은 구겨져 있었다.
“야, 너 미쳤어? 왜 이러고 살아?” 윤희가 소리쳤다. “그냥… 잘 살면 되잖아… 젖소 젖이나 짜면서…” 혜미가 한숨 쉬며 말했다. “미숙아, 사실대로 말해. 무슨 일이야?”
미숙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목장에 젖 가지러 오던 순철. 처음엔 그냥 싹싹한 청년인 줄 알았다. 어느 날 시부모님과 남편이 모두 외출한 날, 순철이 젖을 다 옮기고 차 한 잔 마시러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사료 창고로 데려가더니… 갑자기 끌어안았다.
“처음엔 놀라서 밀어냈어… 근데… 그 애가 너무 따뜻했어…” 미숙이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늘 바빠서… 나한테 관심도 별로 없었고… 순철이는 날 진짜 여자로 봐줬어… 그날 창고 짚더미 위에서… 처음으로 다른 남자한테 안겼어…”
그 뒤로도 계속 만났다. 목장 창고, 빈 헛간, 심지어 새벽에 젖소 우리 뒤에서까지. 미숙이는 점점 빠져들었다. “남편한테 미안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
결국 미숙이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왔다. 순철과 함께 이 허름한 셋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순철이었다. 우리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은혜가 차분하게 말했다. “미숙이 남편이 미친 듯이 찾고 있어.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너도 아직 젊어. 좋은 사람 만나 새로 시작해.”
순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울고 있었다.
미숙이는 우리에게 끌려 나왔다. 차에 태워 경산으로 내려가는 길, 미숙이는 뒷좌석에서 계속 울었다. “나… 어떻게 살아…?”
윤희가 툭 내뱉었다. “살긴 뭘 살아. 젖소 젖이나 짜면서 조용히 살던 년이 왜 이러고 지랄이야.”
미숙이는 더 크게 울었다. 우리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경산에 도착했을 때, 미숙이 남편은 목장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숙이를 보자마자 달려와 끌어안았다.
“여보…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미숙이는 남편 품에서 오열했다. 우리는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돌아오는 차 안. 윤희가 말했다. “저년… 또 도망칠 것 같지 않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