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거울 속 욕망
피로 물든 거울 속 욕망
방 안은 숨 막히도록 고요했다.
그래서 연락 한 통에 달려온 나는 이미 감식반이 현장을 샅샅이 훑고 있는 광경을 마주했다. 그리고 밀린 서류 더미를 뒤로한 채 반장님의 호출에 몸을 실었을 때, 시내 중심가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이미 내 가슴을 강렬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호텔 측의 철저한 입막음 때문에 기자들은커녕 거머리처럼 달라붙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오직 방 앞에 버티고 선 두 의경의 모습만이 겨우 길을 알려주었다.
‘반장님, 늦었습니다. 차가 미친 듯이 막혀서요. 피해자 신원부터 파악할까요?’
시간은 저녁 일곱 시 반, 그래서 겨울비가 쏟아지는 도로는 전쟁터처럼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나 반장은 대꾸 없이 침묵했고, 나는 속으로 ‘쓰벌, 늦었다고 또 강짜 부리는구나’ 하고 이를 갈았다. 그 순간 반장이 낮게 불렀다. ‘김 형사, 이리 와 봐.’
그래서 나는 감식반과 호텔 직원들이 둘러선 방 중앙으로 다가갔다. 사람들 틈 사이로 드러난 것은 여자의 새하얀 나체였다. 그리고 아직 채 피지도 않은 살결과 어린 체구로 보아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탁자 위에 엎드린 채,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팔과 다리는 아래로 축 늘어져 교묵하게 묶여 있었다. 매듭은 탄탄하고 단단해서 서두른 흔적은 전혀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설령 탁자를 통째로 뒤집는다 해도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처지였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구두 밑창이 쩍쩍 달라붙는 느낌에, 온통 짙은 카펫이 흥건한 피바다로 변해 있었으며, 다만 그녀가 묶인 뒤쪽만 네모난 자국이 선명하게 비어 있었다. 범인이 피로 남을 족적을 미리 막으려 깔아둔 무언가의 흔적이었다. 그제야 나는 감기 때문에 코가 막혀 사람들의 코를 막고 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감식반, 저쪽 부분 사진 자세히 확대해서 찍어!’
반장이 가리킨 곳을 보니, 그녀의 양쪽 손목과 목젖 옆 동맥이 날카롭게 베여 있었고, 그래서 과다출혈로 숨이 멎은 듯했다. ‘이건 느낌이 좋지 않아. 큰 놈이야.’ 반장의 예감은 언제나 정확했다. 그래서 나는 지하 보안실로 내려가 CCTV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발견되기 이틀 전 새벽 네 시, 홀로 체크인했다. 프론트에서 카드 결제 확인 후 총총 사라지는 모습, 동반자는 없었다. 복도 카메라는 없었지만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만이 그녀의 움직임을 담고 있었다. 보안실장은 공테이프 대신 CD에 구워주었고, 나는 그 디스크를 쥔 채 다시 위로 올라왔다.
반장은 프론트에서 호텔 관계자와 심각한 대화를 끝내고 나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감식반 말로는 섹스는 한 흔적이 있는데 정액은 없대. 범인이 그녀를 묶어놓고 팔과 목을 그은 뒤에 섹스를 한 거야. 시반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살아 있을 때 출혈을 극대화한 거지. 머리 좋은 새끼야.’ 반장은 계속해서 의문을 쏟아냈다. ‘방음이 철저하다 해도 반항 흔적이 없고, 동맥이 끊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소리도 안 지르고 섹스를 즐겼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무리예요. 아무리 욕망이 강한 여자라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고등학생 나이잖아요. 죽음의 공포가 더했을 텐데… 혹시 약물에 취해 있었다면 모를까.’
반장은 바로 감식반에 전화해 독극물 검사와 흉기 분석을 추가 지시했다. 그러자 겨울비가 차창을 때리는 소리가 으르렁거리며 울렸다. 반장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중얼거렸다.
그때 피해자 신원이 나왔다. 이름은 장혜정, 나이 열아홉, 부산 혜란고 1학년 중퇴, 무직. 가족은 모두 부산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새벽에 도착해 해장국 한 그릇도 못 먹고 여관에 짐을 풀었다. 강형사에게 연락하자 여전한 천하태평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곰탱이! 어디야? 사건 때문에 내려왔냐?’
남부민동의 고급 주택가, 육중한 철문 앞에서 가정부가 문을 열었다. ‘가족분들은 2주 전 유럽 여행 갔어요.’ 그러나 그녀는 아직 딸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형사입니다. 따님이 살해당했습니다. 연락되면 바로 전화 주세요.’ 가정부는 하얗게 질려서 ‘우야꼬…’ 하며 주저앉았다.
다음으로 혜정이 중퇴한 고등학교로 갔다. 담임 여선생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혜정이는… 학교 적응 못 했어요. 자주 가출하고… 집은 잘 사는데 왜 그랬는지…’ 강형사는 내게 속삭였다. ‘가스나, 꼴통 짓 하다 죽은 거 아냐?’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반한 얼굴에 집도 좋은 애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할 리 없어.’
서울로 올라오라는 반장의 독촉에 다시 밤기차를 탔다. 국과수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피해자는 필로폰 중독이 심각했어. 섹스 중 통증과 공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약에 취해 있었지. 환각 상태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결정적인 사실. 손목과 목의 상처는 수술용 메스, 정액은 없었지만 콘돔 사용 흔적과 함께 질강·직장에서 특수 물질이 검출되었다.
나는 호텔로 전화해 카드 정보를 확인했다. 그녀가 사용한 것은 VIP 회원 카드, 원 소유자는 56세 제약회사 사장 추 모 씨. 지갑에서 카드와 주민등록증이 사라진 이유가 여기 있었다. 사장을 만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지갑을 뒤졌지만 카드는 없었다. ‘골프장에서 지갑 잃어버렸는데… 그 카드는 자주 안 써서 신고를 못 했네요.’
나는 냄새가 난다고 보고했다. 반장은 가족 귀국을 기다리자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출입국 기록이 날아왔다. ‘유럽 간 기록이 없어요. 국내에 있습니다.’ 반장은 눈을 번뜩였다. ‘전국 수배령 내려! 사진 붙여서 전단지 만들어! 김 형사,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 수색영장 받아 집을 뒤져!’
비행기로 급히 내려간 부산 집. 강형사와 함께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었다. 결국 담을 넘어 들어간 순간, 코를 찌르는 역한 부패 냄새가 밀려왔다. ‘캬! 이건 시체 썩는 냄새야!’ 이층 끝방, 침대에 부부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죽어 있었다. 약 한 달 전쯤 된 시체였다.
그리고 침대 앞 삼각대에 놓인 캠코더. TV에 연결된 채 켜져 있었다. 손수건으로 스위치를 누르자 화면이 살아났다. 거기엔…
살해당한 딸 혜정이 스위트룸에서 두 남자에게 농락당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엄마가 카메라를 들고 찍고 있었고, 아빠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두 남자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얼굴을 가린 채, 그녀에게 필로폰을 두 대씩 주사했다. 혜정이는 해롱거리며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남자들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빨아대고, 입에, 보지에 콘돔을 낀 채 쑤셔댔다. 그리고 아버지가 수술용 메스를 꺼내 그녀의 손목과 목동맥을 정확히 그었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동안에도 남자들은 번갈아 그녀를 범했다. 혜정이는 환각 속에서 쾌락의 신음을 토하며 웃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그녀의 보지 안에 약을 바르고 화면이 끊겼다.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부부의 자살 방 안.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혜정이는 남편의 딸이 아니에요. 결혼 전 추사장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예요. 남편은 무정자증이었고… 모든 걸 알게 된 후 복수를 계획했어요. 추사장을 닮은 두 남자를 고용해 딸을 미끼로 호텔에 들여보냈고, 카드를 훔쳐서… 결국 우리 가족 모두 죽기로 했어요. 추사장도 끌어들여 끝장내려 했지만… 이제 모든 걸 밝히고 떠날게요.’
비디오는 거기서 끝났다. 강형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억수로 무서운 여자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부유함 속에 숨겨진 욕망과 배신, 끝없는 복수의 소용돌이가 호텔 거울 속에 영원히 새겨진 듯했다. 그리고 차가운 겨울비가 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 비극의 끝을 알리는 듯했다.
호텔살인사건, 피바다 스위트룸, 가족복수극, 필로폰중독, 수술용메스, VIP회원카드, 부모자살, 딸의비밀출생, 제약회사사장, 환각속섹스, 복수의비디오, 부산고급주택가, 무정자증고백, 콘돔증거, 겨울비속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