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의 기억 – 성철이의 면접 날
입시철의 기억 – 성철이의 면접 날
매년 입시철이 오면
아련한 그날이 떠오른다. 처음엔 정말 당황스럽고 후회스러워서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란 묘한 것이어서 쓰러진 그 자리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호소할 수 없는 일이어서 울기도 많이 했고,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독약을 앞에 놓고 망설이기도 했고 유서도 몇 번이나 썼다가 찢어버렸다. 운명이 나 자신에게만 너무나 가혹한 것 같았고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외면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강하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약해서 무너져 버린 양심과 도덕심은 그 시절 나를 혹독하게 고문했다.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지만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그저 지나간 감상일 뿐이다. 뉘우치거나 후회해 본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동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동정은커녕 나를 욕하고 손가락질할 것이 분명한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이었다. 외아들 성철이가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 면접 고사장으로 가던 날.
남편은 성철이가 중2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한창 사업을 일으켜 밤낮없이 뛰던 남편은 과로가 겹쳐 지방 출장을 갔다 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내고 명을 달리했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여섯.
남편과는 한 직장에서 일하다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남편은 내게 부족함이 없는 남자였다. 연애 시절부터 나를 공주처럼 떠받들었다. 한없이 정이 많고 마음씨가 따뜻한 남자였다. 스물두 살에 남편의 사랑에 감복하여 결혼하고 속도위반으로 임신한 아들 성철이를 낳았다.
우리 부부는 더없이 행복하고 단란한 가족이었다. 남편은 키가 크고 인물이 호남형이었고 매너가 너무 좋은 남자였다. 무엇보다 나 하나만을 사랑했다. 나도 남편의 그런 사랑에 맞추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다 해주었다. 섹스도 그가 원하는 체위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 해주었다. 남편은 내가 그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해주면 아기처럼 웃으며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은 섹스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를 때 이미 나는 오르가즘을 알았다. 내가 오르가즘에 도달할 때까지 남편은 정성으로 나를 애무하고 기다려주었다. 나도 밖에 나가면 미모로는 빠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외출하면 탈렌트 부부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았다. 새삼 그런 칭찬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시절엔 그것이 서로를 아껴주는 끈이었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그런 슬픔이었다. 나도 같이 따라서 죽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들 성철이를 보면 그럴 수 없었다. 성철이는 남편의 복사판이라 할 만큼 닮아 있었다. 단지 남편에게는 없는 쌍꺼풀이 있었다. 그래서 간혹 남편 보고 “쌍꺼풀 남편과 비쌍꺼풀 남편”이라고 놀린 적도 있었다.
남편은 그 시기에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독립회사를 차렸다. 열심히 몸으로 뛰는 부지런함 덕에 남편의 회사는 그 흔한 부도 한 번 없이 착실하게 발전했다.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집도 큰 것으로 늘렸다. 그러나 남편은 적은 식구에 너무 큰 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서른여섯 평짜리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행복과 웃음이 아파트가 비좁도록 가득한 느낌이었다.
그런 시간에 남편이 죽었으니 나의 슬픔은 말할 수가 없었다. 겨우 나이 서른여섯에 과부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슬펐다. 그러나 아들 성철이를 보아서라도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을 닮은 또 하나의 남편을 위해서라도 나는 일어서야 했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 남편 회사를 맡았다. 남편도 형제가 없는 편이라 겨우 한 분 계시는 시누이 남편이 그동안 회사를 보아주었지만 남편만 하지는 못했다. 나는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다니던 기억으로 장부를 정리하고 거래선을 찾아다녔다. 처음엔 거친 건설 현장에 여자의 몸으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살기 위해 버텼다. 다행히 남편은 건실한 회사 경영을 하여 어렵지 않게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엔 여자고 과부라는 호기심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도 받았지만 묵묵히 참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사람들을 경영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남자처럼 작업복을 입고 거친 남자에게는 거칠게 부딪쳤고 여자의 장점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여자로서의 장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남편이 너무나 내게 있어서는 큰 자리였기에 웬만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세상 어디에도 죽은 남편만 한 남자는 없었다. 그저 알량한 돈 몇 푼으로 여자의 환심이나 사려는 한심한 남자들뿐이었다. 그래서 난 내 몸을 지킬 수 있었다. 내 몸을 지키는 것이 남편에 대한 도리이고 성철이에 대해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위에서 재혼을 거론했지만 한 마디로 잘라 버렸다. 남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정을 줄 수 없었다. 사는 것이 급박해서 그랬던지 아니면 남편이 내게 남기고 간 사랑이 너무 깊어서 그랬던지 또 나이가 그랬던지 남자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었다. 정신없이 사업에 몰두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차라리 좋았다. 그래서 더 일을 열심히 했다.
사업은 점점 회복하여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발전했다. 자그마한 건물도 두어 채 사서 재산을 늘리고 성철이를 뒷바라지했다. 성철이도 아버지가 돌아간 충격을 잊고 학업에 열중했다. 집에서 나와 같이 있으면 명랑하게 나를 위로해 줄 줄 아는 철이 들었다. 하지만 밖에서는 입이 무겁고 행동이 침착한 사내아이였다. 그리고 공부도 잘해서 언제나 전교 일등을 놓쳐본 적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것이 나의 삶의 의미였고 보람이었다. 일하면서도 신이 났고 남편의 죽음을 잊을 수 있었다. 남편은 비록 일찍 갔지만 나에게 다른 선물을 남겨 주고 간 셈이었다. 그래서 더욱 다른 남자를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입시철이 되면 성철이의 면접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로 나는 변했다. 아니…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성철이는 대학 면접을 보러 갔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나는 성철이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와 TV를 켜고 있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성철이였다.
“엄마… 나… 면접 잘 봤어. 근데… 엄마… 나 좀… 이상해.”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왜? 무슨 일이야?”
“엄마… 나… 면접관이… 나한테… 엄마 얘기를 많이 하더라. 엄마가 우리 회사에 투자해 주면 합격시켜 주겠대…”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뭐라고?”
“엄마… 나… 그 사람들 말 믿고… 엄마 돈으로… 투자해 달라고… 엄마가 해 주면… 나 합격시켜 준대…”
나는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울었다. 너무 많이 울었다.
성철이는 그날 면접장에서 면접관들에게 돈을 요구당했다. 엄마가 투자해 주면 합격시켜 주겠다고. 성철이는 겁에 질려 집에 와서 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나는 그날 밤 성철이를 안고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그 돈을 써서 성철이를 지키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그 면접관들에게 돈을 주고 성철이를 합격시켰다.
성철이는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크고 있다.
나는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성철이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만 매년 입시철이 되면 그날의 떨림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결심한다.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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