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 핀 순결한 비극
연못가에 핀 순결한 비극
나는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 속에서 태어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흔들려도 요염함을 뽐내지 않으며 속은 텅 비어 담담한 빛을 뿜어내는 그 고고한 자태가 너무나 마음을 사로잡으니까.
국화가 은은한 기품을 뽑낸다면 모란은 화려한 부귀를 상징하고 연꽃은 꽃들 가운데 가장 군자다운 풍모를 지녔으니까.
수많은 꽃들 가운데 도덕적 수양이 깊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군자의 덕을 닮은 연꽃을 나는 언제나 가장 아끼고 그래서 그 꽃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니까.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도 티 없이 맑은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은 마치 세상의 때에 몸을 담그면서도 결코 더럽히지 않는 고결한 군자를 떠올리게 하고 잔잔한 물결에 씻기며 겉치레 없이 맑은 속을 드러내는 그 모습이 바로 연꽃의 진짜 아름다움이니까.
이런 연꽃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옛 친구 석순이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니까.
오랜 옛날 일이다.
내 친구들 가운데 나처럼 연꽃을 유난히 사랑하던 석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뜻밖에도 한 절의 젊은 스님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생겼으니까.
그 사건 때문에 우리 친구들은 석순이를 향해 날카로운 비난을 퍼부었고 그래서 그녀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으니까.
그때 석순이는 우리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스물세 살의 풋풋한 아가씨였는데 자주 찾던 그 절에서 만난 젊은 스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석순이는 나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특히 가까웠는데 이 일로 인해 우리 사이가 서먹해졌고 나 역시 다른 친구들처럼 그녀가 스님을 사랑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석순이는 우리들의 매서운 질책을 견디며 젊은 스님과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래서 우리가 더 말릴수록 그녀는 더욱 불타오르는 정열로 그 사랑을 지켜냈으니까.
그때 우리들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석순이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석순이에게서 그 모든 사정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깊은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졌으니까.
석순이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드나들었고 부모님이 불공을 드리는 동안 그녀는 절 옆 연못가를 거닐며 핀 연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으니까.
그렇게 자라 스물세 살이 된 뒤에도 석순이는 그 연못의 연꽃을 보기 위해 틈만 나면 절을 찾았고 집 형편이 넉넉지 못해 차 한 대 없었기 때문에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 먼 산길을 홀로 걸어 올라갔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는데 그 절에 머물던 젊은 스님과 우연히 마주치며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까.
처음에는 외로운 산길을 홀로 걸었지만 스님을 만난 뒤부터는 그 길이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고 토요일 늦저녁 버스에서 내리면 어느새 스님이 종점에서 기다리다 함께 절로 올라갔으니까.
늦은 밤 어둠이 내린 산길을 둘이 나란히 내려와 석순이가 버스를 타면 스님은 혼자 절로 돌아갔으니까.
이렇게 석순이는 절을 더 자주 찾게 되었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두 사람이 대낮에 산책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소낙비를 만나 흠뻑 젖었으니까.
우산도 없이 나선 길이라 비에 젖은 석순이의 옷이 몸에 달라붙어 무르익은 스물세 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래서 그 순간 젊은 스님의 오랜 참았던 욕정이 터져 나와 산길에서 석순이를 덮쳤으니까.
석순이는 처음에는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스님의 힘에 눌려 결국 그 동안 소중히 지켜온 순결을 빼앗기고 말았으니까.
스님의 거친 손이 스커트를 끌어내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그의 뜨거운 손길에 온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스님의 입술이 목덜미를 핥으며 유방을 주무를 때 그의 단단한 물건이 이미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으니까.
고통에 석순이는 비명을 질렀지만 세찬 비 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고 스님은 그녀의 배 위에 올라탄 채 욕망을 거침없이 풀어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님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뜨거운 정액을 쏟아냈으니까.
그 일 이후 두 사람은 틈만 나면 만나 깊은 관계를 이어갔고 마침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으니까.
배가 불러오자 석순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도시 외곽에 작은 방을 얻어 스님과 동거를 시작했으니까.
집에서 쫓겨난 석순이와 절을 나온 스님은 어렵사리 가정을 꾸렸고 스님은 공사장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으니까.
우연히 길에서 석순이를 만났을 때 그녀 등에는 어린 딸아이가 업혀 있었고 꿈 많던 아가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아낙네가 되어 있었으니까.
나를 피하려는 그녀를 달래 다방으로 데려가 사정을 듣고 지갑 속 돈을 모두 쥐어주었고 집 주소를 알아냈으니까.
돌아서는 석순이는 눈물을 삼키며 미소 지었고 나 역시 울음을 꿀꺽 삼키며 손을 흔들었으니까.
얼마 뒤 친구들과 함께 그녀 집을 찾았는데 조그만 방에 서랍장 하나뿐이고 딸아이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이 참담했으니까.
석순이는 오히려 우리를 대접하려 부엌으로 달려갔고 우리는 시장에 다녀와 쌀과 음식을 사다 민혜가 요리를 했으니까.
나 역시 친구와 함께 이불과 옷, 화장품을 사다 주었고 늦은 밤에야 헤어졌으니까.
그날이 석순이에게 우리가 베푼 마지막 우정이었으니까.
그 뒤 나는 교사 임용시험 준비로, 다른 친구들도 취업으로 바빠 석순이를 찾지 못했으니까.
세월이 흘러 내가 지방 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지 석 달 만에 민혜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석순이 남편이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충격에 나는 그만 주저앉을 뻔했으니까.
친구들과 찾아갔을 때 석순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매일 저녁 골목에 나가 남편을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그녀를 돌보았지만 석순이는 그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으니까.
추운 겨울이 오자 따뜻하던 날씨와 달리 석순이는 결국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으니까.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그녀는 남편 곁에 묻혔고 홀로 남은 네 살 딸아이는 그 절 주지 스님이 데려갔으니까.
석순이와 젊은 스님의 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고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더는 찾아가지 못했으니까.
그 아이를 보면 석순이가 떠오를 테니까.
지금쯤 그 아이도 어머니처럼 연꽃 핀 연못가를 거닐며 고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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