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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찾아온 뜻밖의 인연 1

떵개야 (1.♡.29.193) 6 906 0 0 2025.10.23

퇴직 후 찾아온 뜻밖의 인연 1

 

사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다섯 해가 되어간다.

젊은 시절엔 대기업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이후엔 구매부서의 책임자로 꽤 괜찮게 나름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윗사람의 마음을 잘못 읽은 탓에 줄 하나 잘못 서서 결국 연줄처럼 얽혀버린 인사파동에 휘말렸고, 그렇게 반쯤은 스스로, 반쯤은 떠밀리듯 퇴직을 했다. 그때 시작한 일이 바로 ‘오퍼업무’였다.

해외 근무 경험이 조금 있고, 영어도 제법 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역이라면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뛰어들었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쟁자는 많았고, 예전 거래처 직원들조차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세상은 이미 내가 알던 속도보다 훨씬 빨라져 있었다.

결국 사무실을 더 작은 곳으로 옮기고, 함께 일하던 직원도 내보냈다.

홀로 남은 공간은 적막했다.

커피를 내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포기란 선택지에 없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카탈로그를 챙겨 들고 거래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보따리 장수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택배를 대신 받아줄 곳이 필요해 마주 보이는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항상 불이 켜져 있던 그곳엔, 밝은 색 옷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고, 표정엔 따뜻한 여유가 묻어났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제가 대신 받아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가 낯선 사무실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그녀의 인상이 오래 남았다.

감사한 마음도, 묘한 설렘도 함께였다.

언젠가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 새로 정리한 거래처 목록을 펼쳤다.

전화를 돌리고, 미팅 약속을 잡고, 발품을 팔았다.

낯선 영업의 세계는 쉽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엔 지친 마음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조용한 사무실엔 사람 냄새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예전엔 웃으며 맞이해 주던 직원이 있었는데, 이제는 반겨주는 사람 하나 없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지난번 부탁했던 바로 그 여성이 봉투 하나를 건넸다.

국세청에서 온 부가세 신고 통지서였다.

“25일까지 내야 한대요.” 그녀의 말끝에 웃음이 묻었다.

나는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검정 투피스에 흰 스타킹을 신었다.

단정하면서도 어딘가 우아한 느낌이 있었다.

유부녀일까, 아니면 아직 미혼일까. 괜히 궁금해진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밤 8시.

아내는 이미 와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내는 여느 때처럼 반갑게 나를 맞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아내를 마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예전엔 퇴근 후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장난삼아 안기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경제적 위축이 자존감을 갉아먹은 탓이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겼는지 아내가 먼저 다가왔다.

늦게 결혼한 탓에 아이는 아직 어렸고, 나보다 젊은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부부의 온기가 돌아왔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은 여전히 허전했다.

며칠 뒤, 옆 사무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문이 열려 있었고, 안쪽에선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문득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지하 주차장에 늘 고급차들이 세워져 있었기에,

이 건물엔 혼자서도 돈을 잘 버는 사장들이 꽤 있는 듯했다.

그녀도 그중 하나일까?

내 사무실 문을 열고 음악을 틀었다.

그때, 그녀가 걸레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곱슬하게 묶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어깨에 닿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도 같은 인사를 건넸다.

세 번째 보는 그녀였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싱그러워 보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눈빛 속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온기가 있었다.

오늘도 일을 나서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밥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어디서든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그때 옆사무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반짝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내 안 깊숙이 들어왔다.

그 순간, 하루의 피로가 잠시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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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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